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히가시노 게이고, 패러독스와 시간의 의미를 탐구하다

by 무적의우리친구 2025. 5. 20.

히가시노게이고는 시간를 소재로 쓴 글이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는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맥락을 묘사한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패러독스적 전개가 자주 등장한다. 이번 글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나타나는 패러독스와 시간의 의미를 중심으로 그 문학 세계를 탐색해본다.

1. 시간의 흐름은 단선적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시간'이 진실을 감추는 도구이자 진실을 밝혀내는 열쇠로 등장한다. 범행이 일어난 시점과 알리바이의 구조, 그리고 그 시점을 왜곡하는 인간의 선택은 독자에게 "시간은 과연 객관적인 흐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히가시노는 시간을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흐름이 아닌, 사건과 감정, 그리고 기억을 따라 뒤틀리는 유기체적 구조로 그려낸다. 이는 마치 시간 자체가 인간의 선택과 감정에 따라 굴절될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2. 패러독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 중 하나는 바로 '패러독스(paradox)'이다. 논리적으로는 모순되지만 동시에 진실일 수 있는 상황들, 예를 들면 범인이 희생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거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죄를 뒤집어쓰는 상황 등이 대표적이다.

『백야행』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와 인간 내면의 이중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패러독스는 독자에게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미스터리 이상의 사유를 요구한다.

3. 시간 여행과 운명의 고리: 『라플라스의 마녀』와 『기린의 날개』

히가시노 게이고는 SF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에서도 시간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다. 『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인과관계와 미래 예측이라는 과학적 설정을 통해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라는 주제를 탐색한다. 반면 『기린의 날개』에서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도덕적 판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작품 모두 시간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상호작용하며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독자에게 ‘운명’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4. 기억과 시간의 왜곡: 『몽환화』와 『편지』

『몽환화』에서는 기억의 불완전성과 시간의 주관성을 보여준다. 한 인물이 기억하는 과거는 사실과 다르며, 이 왜곡된 기억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편지』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보여주며, 과거의 행위가 현재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탐구한다.

여기서 '시간'은 더 이상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감정과 관계, 그리고 후회와 용서의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히가시노 문학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5. 왜 히가시노의 '시간'은 특별한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려내는 시간은 단지 미스터리의 구조를 위한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물의 삶과 감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며, 독자의 사고를 자극하는 철학적 도구다. 그는 사건의 진실보다도, 그 진실이 형성되는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시간'이 놓여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물, 미래를 통제하려는 인물, 현재를 외면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각각은 시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며, 우리에게도 스스로의 '시간 감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패러독스'와 '시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와 시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깊이 있는 문학적 여정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그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시간, 기억, 윤리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