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은 1942년 발표 이후, 실존주의 문학의 상징으로 평가받으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읽히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 뫼르소는 무감정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며, 사회적 규범에 반응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N세대(20~30대)가 겪는 무기력, 공허함, 사회적 소외감과 그의 모습이 닮아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뫼르소의 무감정 – 감정 결핍인가, 세계에 대한 정직함인가
『이방인』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는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줍니다. 이 문장은 단지 냉소적인 표현이 아니라, 주인공 뫼르소의 세계 인식 방식을 정확히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정서적 반응을 유예하거나 거부하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려는 인물입니다.
작품 내내 뫼르소는 사회적 기대에 따르지 않고, 슬픔·후회·분노 같은 감정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연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에 맞춰 감정을 흉내 내는 대신, 오히려 세계의 무의미함과 부조리를 인정하는 정직함을 택합니다. 이때의 정직은 반사회적 성향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고찰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N세대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N세대의 무기력 – 감정의 소진과 ‘이방인’화되는 개인
N세대는 취업난, 불확실한 미래, 불균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높은 학력과 정보 접근성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뫼르소처럼, N세대는 타인의 기대에 쉽게 반응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으며, 삶의 사건들에 ‘어쩌면 그렇고, 어쩌면 아닌’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냉소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서적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뫼르소가 세상의 질서에 반응하기를 거부하고, 고요한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감정도, 희망 섞인 거짓말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세계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맞이합니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 – 부조리 속 존재의 정당성
카뮈는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란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찾지만, 세계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기에, 이 둘의 충돌에서 부조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의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뫼르소는 사회적 기준에 어긋나고, 감정도 결여된 채 살아가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타인의 프레임으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행복했다”고 말하며, ‘나로서 존재했음’에 대한 수용과 해방을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 N세대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결론: 뫼르소는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직했다
『이방인』은 실존주의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되었고,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감정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뫼르소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감정을 동원하지 않았던 사람이며, 그의 침묵은 도피가 아닌 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였습니다.
N세대가 겪는 무기력은 단순한 ‘의욕 상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감정의 거리두기이자, 존재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낯섦 속에서, 우리는 뫼르소처럼 조용히 묻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