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은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으로, 전염병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14세기 유럽,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를 휩쓴 페스트(흑사병)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렸고, 그 혼란 속에서 인간의 선함과 이기심, 사랑과 욕망, 지혜와 어리석음이 극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데카메론』은 그 혼란의 시대 속에서 인간 군상을 100편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 본성의 본질을 질문하게 만듭니다.
페스트라는 위기 속 인간의 민낯
『데카메론』의 배경은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 당시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스트입니다. 보카치오는 이야기의 서문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간은 극단적 행동을 보입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 재산을 약탈하는 이웃, 종교적 광신에 빠진 사람, 방탕하게 삶을 소비하는 무리 등 위기 상황은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특히 보카치오는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냉철하게 관찰합니다. 그는 선한 인간보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욕망에 충실한 인간상이 더 현실적임을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웃음과 풍자 속 진짜 인간 이야기
『데카메론』은 단순한 비극적 상황 묘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점이 특징입니다. 사랑과 욕망, 속임수와 지혜, 기지와 실패가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들은 현실의 인간 세계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족이나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남녀, 장사꾼, 수도사, 하인, 귀족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사랑에 빠지고, 거짓말을 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보카치오는 인간을 도덕적 잣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허세와 위선을 벗겨내려 합니다.
위기 앞에서 웃음은 해방구가 되고, 풍자는 권력자나 종교 권위마저 조롱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 본성의 솔직함과 생명력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현대 사회와 데카메론 – 위기 시대의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데카메론』은 페스트라는 과거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 군상의 모습은 오늘날 위기의 시대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재난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거나, 가짜뉴스가 퍼지고, 혐오와 배제가 증가한 모습은 중세 유럽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카치오는 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내는 이기심과 동시에 삶을 지속하려는 긍정적 본능을 통찰합니다. 그는 인간이 완벽하거나 도덕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 본성 그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위기 속에서도 유머와 지혜, 사랑과 연대라는 본능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결론: 위기의 시대, 인간을 이해하는 고전의 힘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 안에는 도덕적 교훈보다 더 솔직한 인간의 삶, 사랑, 실수, 그리고 생존 본능이 담겨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오늘 우리에게 『데카메론』은 다시 묻습니다.
“당신이 믿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위기 속 진짜 인간의 모습은 바로 이 작품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전이 시간을 넘어 계속 읽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