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
이어령 선생은 말을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말은 곧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는 말을 통해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내면을 인식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언어학의 이론적 틀을 넘어서 철학적, 종교적 깊이까지 품고 있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로고스(logos)’, 즉 세계의 질서이며 이치를 드러내는 도구이다. 성경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구절처럼, 말은 시작이고 본질이다.
2. 말의 부재는 존재의 상실이다
이어령은 말을 잃어버린 시대를 깊이 우려한다. 디지털화된 언어, 감정 없는 텍스트, 즉각적인 반응만이 오가는 시대 속에서 ‘깊은 말’은 사라지고 있다. 그는 이것을 **“말의 실종, 관계의 실종”**으로 진단한다.
특히 SNS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속도는 빠르지만 관계는 얕다. 말이 인간을 잇는 다리가 되기보다 오히려 단절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그는 말이 얼마나 고유한 ‘삶의 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신중히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3. 말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다
이어령의 사유에서 가장 강력한 말에 대한 정의는 바로 **“말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진실이다. 그는 젊은 시절 논객으로 날선 비평을 쏟아냈지만, 어느 순간 그 말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말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선택’이자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특히 병중에 있을 때, 그는 누군가의 한마디 말—“기도하고 있습니다”—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를 말하며, **“말은 진정한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4. 침묵과 말: 양날의 지성
말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이어령은 **‘침묵의 가치’**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는 “참된 말은 침묵 속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더 많은 침묵이 필요하며, 그 침묵이 깊어질수록 말은 더욱 절제되고 순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동양적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노자의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구절처럼, 이어령의 ‘말’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언어철학이 아니라 인간됨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다.
5. 말은 영성으로 나아가는 사다리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이어령은 인간의 말이 궁극적으로 ‘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식과 논리를 넘어서 말이 사랑과 믿음, 존재에 대한 신뢰를 담아야만 진정한 인간의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기도’와 같은 말, ‘위로’와 같은 말, ‘부름’으로서의 말이라고 표현한다. 즉, 말이란 단지 정보를 주는 기능을 넘어서 관계 맺음, 존재의 부름, 신성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에서 고결한 행위이다.
6. 말의 윤리, 다시 말의 교육으로
이어령 선생은 생애 후반기에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진정한 교육이란 “생명을 살리는 말, 삶을 일으키는 말”을 배우고 나누는 것이라고 믿었다.
‘말하기 교육’이 단순한 토론기술이나 스피치 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존엄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도 다시 조명되어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결론: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이어령의 ‘말’에 대한 사유는 단순한 독서 감상을 넘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남긴다.
- 나는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 그 말은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 혹은 누구를 다치게 하고 있는가?
말은 곧 존재다. 이어령의 글을 읽고 나면, 말을 더 신중하게 쓰고, 더 따뜻하게 건네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말이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